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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불경하게도 처음 떠오른 생각은 "부고를 쓰는 사람들은, 참 힘들겠다..."였다. 어떤 작가들은 그 펜이 일구어낸 성취가 너무 높고도 깊어서, 그 궤적이 너무 길고도 넓어서 경탄을 넘어선 두려움을 선사하는데, 존 업다이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현재 살아있는 작가 중 나에게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이는 조이스 캐롤 오츠다. "아아...저걸 언제 다 읽지...") 그는 50년 동안 글을 썼다. 지침 없이, 경계 없이 글을 썼다. 뉴욕 매거진의 부고에 따르면, 이른바 "영감의 위기"에 대처하는 그의 방법은 단순히 "그것을 갖지 않는다"였다. 그는 일주일에 닷새동안, 매일같이 세 페이지를 썼다. 그렇게 그는 인간이 생각해낼 문학의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그는 장편소설을 썼고, 단편소설을 썼고, 시를 썼고, 평론을 썼고, 여행기를 썼고, 인터뷰를 썼고, 회고록을 썼고, (스포츠를 포함한) 에세이를 썼다. 뉴욕 매거진은 그를 "the greatest belletrist of all time"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러니까 존 업다이크는 래빗 시리즈의 소설가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누구보다도 일상의 사소한 편린들을 유머와 재치, 우아함으로 가공해 유려한 산문으로 뽑아내는 재능을 가진 글쟁이였다. 뉴요커의 부고는 존 업다이크의 면모 중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유머리스트로서의 업다이크"라고 전하고 있다. 뉴요커의 스태프로 커리어를 시작해, 뉴요커의 품 안에서 재능을 싹틔운 업다이크는 E.B.화이트와 제임스 써버를 관통하는, 새콤한 아이러니와 경쾌한 입담이 찰지게 뒤엉킨 "comic tone"을 심장에 품고 있었다. 업다이크는 자신의 한 팬에게 이렇게 말했다. "Humor is my default mode." 나는 뉴요커의 humor writing 모음집 Disquiet, Please!의 차례를 훑어내리며 존 업다이크의 이름을 찾는다. Paranoid Packaging.그가 1996년 뉴요커에 기고한 글이다. 그는 너무나 질진 나머지, 도무지 떨어져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박스 포장 테입에 대한 한탄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손톱을 부러뜨릴 지경으로 단단하게 포장된 시리얼 상자다. 그리고, 이른바 어린이 보호용 안전장치가 철옹성처럼 입구를 방어하고 있는 약병. "All this time, childproof pill bottles had been imperceptibly toughening and complicating, to the point where only children had the patience and eyesight to open them. Though the two arrows were lined up under a magnifying glass and superhuman manual force was exerted, the top declined to pop off." 그 다음엔 "뜯는 곳"이라는 거짓된 표지로 우리를 우롱하는....기내에서 간식으로 나누어주는 땅콩 포장...! "The minuscule notch letter "Tear Hear" was a ruse. (..) Mounting frustration, intensified by the normal claustrophobia, cramping, and fright of air travel, produced dozens of cases of apoplexy and literally thousands of convulsively spilled peanuts." 나는 등줄기에 찰싹 달라붙은 감기기운을 잠시 잊은 채, 신나게 키득거린다. 웃음 만큼 좋은 약이 없다더니. 오늘 밤엔 밀린 빨래를 굴려넣은 채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업다이크의 에세이를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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