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는 알라스카를 향해 가는 중이다. 그녀는 혼자다. 아니, 그녀의 유일한 동반자는 그녀의 개, 루시다. 우리는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왜 알라스카로 떠나게 되었는지, 그곳에서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혹은 짐작하는 것은 그녀가 새로운 삶을 결심했으며 그것을 향한 여정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낡은 차는 고장나고, 그녀는 잠시 발이 묶인다. 소녀의 예산은 빠듯하다. 그녀는 차 안에서 웅크린 채 잠을 자고, 공중 화장실에서 몸을 닦는다. 소녀는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슬쩍 주머니에 집어넣다가 붙잡힌다. 그녀가 구치소에서 밤을 나는 사이 루시는 사라진다. 소녀는 루시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Wendy and Lucy는 참 이상한 영화다. 단서는 모호하고 시선은 침묵하며 순간은 그저, 고요하다. 소녀는 주인공이면서도 주인공이 아니다. 소녀가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그들이 속한 삶의 한 자락에서 툭, 무심하게 내던져질 뿐이다. 경찰은 고장난 기계를 향해 비쭉 불평을 늘어놓고, 카센터 주인은 전화통을 붙든 채 무언가에 잔뜩 열을 올리고, 지나치던 젊은이들은 그들의 잡담에 열중한다. 세계는 특별히 친절하지도, 적대적이지도 않다. 일상의 공간, 일상의 시간. 다만 그것은 낯설다. 소녀는 세계에 섞여들지 못한 채 그 표면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그러니까 그건 이방인의 세계다. 돈, 직업, 가족, 친구, 시스템 안에서 우리를 정의하는 것들이 증발해버린 순간, 그 진공 상태에서 마주 본 세계다. 소녀는 걷는다. 소녀의 어깨너머로 열차 소리가 울려퍼진다. 소녀의 얼굴로 햇빛이 녹아들고 소녀의 발끝으로 어둠이 스며든다. 소녀는 웃는다. 소녀는 울음을 터뜨린다. 혹은 소녀는 그냥 그곳에 존재한다. 미셸 윌리암스의 연기는 그저, 숨이 막힌다. 눈썹의 떨림으로, 발자국 소리로, 구부러진 어깨로, 창백한 안색으로, 가느다란 다리 사이로 소녀의 외로움과 두려움이, 작은 환희가 뭉클거리며 흘러나온다. 그 정서는 너무나 강력해서, 혀 끝으로 그 맛과 촉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Wendy and Lucy는 거르고 거르고 걸러내, 마침내 아찔할 정도의 농도로 응축된 결정과 같은 영화다. 심장을 찌르기 위해 사실 많은 수식이 필요하지 않음을 상기시키는 영화다. 이토록 낮은 목소리로 이토록 강렬한 울림을 전하는 영화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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