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의 목적지는 Carlyle Hotel이었다. 스물여덟살의 한국여자와 스물여섯살의 독일여자는 둘 다 우디 앨런에게 조금은 과할 정도의 애정을 품고 있었다. 우리의 우디가 매주 월요일, Carlyle Hotel 카페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리하여 "애니홀"로 3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을 때 조차 오스카 시상식을 제끼고 대신 클라리넷을 불어재끼고 있었다는 일화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이 아니었던가. 뉴욕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가 놓칠 수 없는 이벤트가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우디를 직접 알현하는 것이었다. 단 하나, 우리를 근심하게 한 것은 바로 공연의 가격이었다. 호텔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본 바, 공연의 cover charge는 테이블에 앉을 경우 100달러, 심지어 바에 앉을 경우에 조차 70달러였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돈 한푼이 아쉬운 유학생에겐 가능한 예산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액수였다. 뉴욕에 온 이래 꾸준히 무선인터넷을 훔쳐쓰고 있는 한국여자와 식당에서 'tap water'이외의 음료를 거의 주문하지 않는 독일여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시도도 해보지 않은 채 포기할 만큼 우리의 애정은 얕지 않았으며, 우리의 무모함은 가볍지 않았다. 그러니까 어찌되었건 간에, 우리의 목적지는 Carlyle Hotel이었고, 우리의 목적은 우디의 연주를 보는 것이었다.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와 A는 머리카락에 눈송이를 주렁주렁 단 채 조우했다. 연주의 시작은 8시40분. 우리가 만난 시간은 6시. 2시간 40분 안에 무언가 묘책을 마련해야했다. 호텔 앞에는 빨간 유니폼을 입은 한 남자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그에게 접근하기로 결정했다. No1. 내부자를 우리편으로 만들어라. "Hi." "Hi, ladies," "This is the place...where Woody Allen plays..right?" "Yes. Are you two here to see the show?" "Yes..we are.." "Good. The cafe opens around 6:30. It's good that you came early. You girls can get good seats." "Nice...but the problem is....the price.." "It's seventy dollar if you sit at the bar." "We know that, but still...it's expensive.." "Are you tourists?" "No, we are students. So we can't really afford that, you know.." "You just came here to see Woody?" "Yes, we are huge fans of Woody." "Well, that's really nice. Why don't you go inside and wait? It's cold out here." "Thanks." 남자는 우리를 바 안으로 안내했다. 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아직 시간이 이른 탓인지 혹은 날씨가 궂은 탓인지, 바 안은 텅 비어있었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그 때 우리의 옆 자리에 한 중년의 남자가 다가와 앉았다. 그는 주머니에서 수첩과 만년필을 꺼내더니 고뇌에 찬 표정으로 무언가를 적어내리기 시작했다. 눈 오는 날 오후, 어퍼이스트 사이드 호텔의 바에 홀로 앉아 글을 쓴다? 아주 성공한 작가? 혹은 글쓰기가 취미인 변호사? A와 나는 남자를 힐끗거리며 가능한 시나리오를 속삭였다. A가 말했다. "Maybe, he can pay for us." "Yeah, Right." 나는 이죽거리며 대답했지만, 머릿속에서는 어느새 파렴치한 상상이 활짝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한국과 독일에서 날아온,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상당히 매력적이며 똑똑한(여기서 상상은 자기기만의 기류를 탄다) 두 여인을 위해 지갑을 열어줄 관대한 중년의 신사라. No2. 스폰서를 구한다...? 그때 칵테일을 홀짝이던 남자가 손짓을 하더니 웨이터를 불렀다. "This is not what I ordered." 남자가 경직된 목소리로 말했다. "Excuse me, sir? You said ****, this is ****" 웨이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No." 남자가 차갑게 말했다. ".....but...it is" 웨이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I said it's not." 남자가 말했다. "I'm sorry sir, but..." 웨이터가 말했다. "This is not the TASTE." 남자가 바위를 쪼개버릴듯한 기새로 내뱉었다 "I'm sorry, sir. Do you want to get another one?" 웨이터가 말했다. "Just take it, and let the bartender taste it. He'll know what I mean." 남자가 말했다. "Sorry, sir." 웨이터가 말했다. "This is terrible." 남자가 눈썹을 치켜들며 말했다. "Sorry, I'll get you a new one." 웨이터가 말했다. "Well, this is TERRIBLE" 남자가 턱 끝을 치켜들더니 다시 한번 말했다. 나는 웨이터의 손에서 칵테일잔을 빼앗아 남자의 정수리에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A에게 말했다. "So much for the generous gentleman, huh?" 우리는 우리의 어리석은 공상을 폐기처분한 채 곁눈으로 남자를 째려보며 커피를 들이켰다. 그때 빨간 유니폼의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People are starting to line up. You'd better go there now."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카페로 향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직원이 카페 입구에서 손님을 받고 있었고, 그 앞에는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두 명의 잘생긴 청년이 서있었다. 청년들은 우리를 보더니 "Ladies first."라며 활짝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했다. 우리는 당황했다. 카페 직원이 재촉하는 듯한 표정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Well, Ladies....?" 나는 잠시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우아하게 입장한 뒤 울면서 카드를 긁을 것인가, 혹은 즉시 뒤돌아선 채 A의손을 잡고 전력질주를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If it isn't too much to ask....can you tell me how much the cover charge is?" "Oh sure, sure. It's 75 for the bar and 100 for the table, and minimum 25 dollar for drinks" 홈페이지의 가격보다 5달러가 더 비싼데다가, 드링크 미니멈이 25달러? 거기에 tax와 tip까지 합하면...머릿속에서 계산기가 핑글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 청년의 입가에선 어느새 웃음이 사라지고 있었다. A가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이제 그만 집에 돌아갈 타이밍이라는 것을 알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No3. 할인을 구걸하라. "Ummm.....Is there any way...." "Yes?" "Any way...that we can get like...student discount?" "Pardon?" "I said..student discount." "Sorry?" "STUDENT DISCOUNT!!!!!" 직원의 얼굴은 화강암처럼 굳었고, 청년들의 눈동자는 차가운 조롱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나는 잠시 전열을 가다듬은 뒤 최대한의 비통함을 담아 말했다. "Don't you think the price is too expensive for students? We know we can't afford it...but we are big fans of Woody and we came here just to see him. Is there any way...that we can get some kind of discount?" "There is nothing I can do for you." 남자가 교관처럼 고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Ok....what if I ask Woody and he says yes?" 남자의 태도에 빈정이 상한 나는 저항하듯 말했다. "Well, If you are really planning to do something like that, I have to call the SECURITY." 남자는 말을 끊자마자, 나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뒤에 서있던 청년들을 향해 눈짓을 했다. 나와 A는 호텔 밖으로 걸어나왔다.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눈줄기가 패배자들의 얼굴을 향해 사납게 들이쳤다. "God, You were really courageous." A가 말했다. "There was nothing to lose. And also, now we have nothing to regret." 내가 말했다. "Do you think... it was just...a stupid idea?" A가 말했다. "Well,,,it was....an experience.." 내가 말했다. "Experience, right." A가 웃으며 말했다. "And now I know I'm pretty good at swallowing humiliation." 내가 말했다. "Good for you." A가 말했다. "Good for me!" 내가 말했다. 우리는 DVD 대여점에 들러 "Play it Again, Sam"을 빌린 다음, 초콜렛 우유와 초콜렛을 먹으며 담요를 뒤집어 쓰고 낄낄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귀여운 두 청년을 포함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관중 앞에서 클라리넷을 열심히 불고 있을 그에게 속삭였다. No4. 텔레파시를 보낸다. 당신에게 이토록 충성스런 여성팬이 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그러니까 언젠가는 말이죠, 할인을 해줘요, 우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