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don’t believe in God, but I miss Him.” 스무살에 무신론자가 되었으며, 예순살에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명명하는 남자. 영국의 소설가 줄리안 반즈는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한다. 그는 철학 교수인 형에게 이러한 자신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 대답은 한 단어로 날아왔다. “Soppy.” "Nothing to be frightened of"는 죽음에 관한 책이다. 혹은 목덜미에 유통기한이 찍혀있음을 자각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부터의 삶에 관한 책이다. 귀를 막고 있던 솜뭉치가 빠져나가고, 이제껏 무시했던 시계 바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것은 “당신 이전의 손님이 맞춰놓고 간 알람에 맞춰 낯선 호텔방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그것은 “어느 순간 잠에서 깨어나 어둠과 혼란, 그리고 당신이 이제껏 임대한 세계에 머물고 있었다는 끔찍한 깨달음 속으로 내던져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사후의 삶을 제시하는 종교일까? 줄리안 반즈에게 그것은 “아름다운 거짓말”이다. 종교가, 혹은 기독교가 그토록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정말 그것을 믿어서가 아니"라 “캐릭터, 플롯, 선과 악의 투쟁이 하나의 근사한 소설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할리우드가 끊임없이 탐식하는 스토리텔링의 완벽한 사례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비극.” 쥘 르나르는 말했다. “아마도 신이 불가해하다는 사실 정도가 그의 존재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찬송하는 “자아 성취”의 세속적 천국은 어떤가. 안정적인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재산을 증식하고, 문화를 소비하고, 헬스클럽에 가는 것? 그 모든 조건을 다 충족시키면, 체크 박스에 전부다 동그라미를 치고 만점을 기록하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그렇다. 그럴 것이다. 아니...혹은 그렇지 않다? 반즈에게 이것은 “우리가 선택한 신화”이며, 어느 순간 “무덤이 활짝 열리고, 치유받고 완벽해진 영혼들이 성인과 천사의 무리에 합류한다”는 것 만큼의 똑같은 “망상”일 뿐이다. 혹은 좀 얄팍한 명상은 어떤가. 그러니까 소멸에 대한 자각이 없이는 삶을 진정으로 음미할 수 없다는 근사한 문구는?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그것을 믿는가? “나는 정말로 죽음을 부인하는 나의 친구들이 꽃다발/예술작품/와인 한 잔을 나만큼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대답은 물론 "아니다.” 또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것이 있나? 족음은 어쩌면, 신보다도 더욱 견고한 존재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Vengeful One에서 Merciful One으로" 모습을 달리한 기독교의 신과 달리, 죽음에는 개량과 협상의 여지가 없다. 죽음은 그저 그 곳에, 100%의 확률로 존재할 뿐이다. "Nothing to be frightened of"라는 제목은 사실, 오독의 여지가 있다. 일견 고개를 꼿꼿히 들고 승리를 선언하는 듯한 문구가 이를테면 값싼 자기개발서나 명상집의 세일즈 문구를 연상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자기도취적 승리와는 거리가 먼 얼굴이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고, 입은 꼭 다물어졌으며, 커다랗게 정면을 응시하는 눈에는 살짝 눈물이 고여있다. 줄리안 반즈는 누구보다도 죽음에 대해 예민한 촉각을 가진 남자다. 혹은 죽음의 공포에 끊임없이 뒤쫓기는 남자다. 그는 한밤중에 “일어난다, 혼자, 완전히 혼자로, 주먹으로 배게를 내리치고 ‘ Oh no Oh No OH NO’ 끊임없이 울부짖는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Nothing to be frightened of"에서 방점이 찍히는 것은 "Nothing"이다. “There is NOTHING to be frightened of.”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가 아니라 두려워할 “것”이 없다. 죽음은 그저 커다란 구멍이고 그 이후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므로. 다시 쥘 르나르: “가장 진실되고 가장 정확하며 가장 의미로 가득한 단어는 “nothing”이라는 단어다.” 우리는 죽는다. 우리는 모두 죽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백년 전의, 수천년 전의 그들보다 더 “나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가? 플로베르의 말. “모든 것은 학습되어야 한다, 책을 읽는 것부터 죽는 것까지.” 그렇다면 우리가 현명해졌을 때, 우리가 보다 깊은 통찰력을 갖게 되었을 때, 죽음의 공포를 향해 우리는 방패를 얻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더 “잘” 죽게 되는가. 괴테의 사례. 그는 사후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며 냉소적이었다. 그는 불멸은 “게으른 편견”이며 그것을 믿는 이들은 “지나친 자축"에 빠져있다고 믿었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입을 비죽거리며 이러한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었다. "만약 정말로 사후의 삶이 존재한다면, 나는 그 믿음을 설파하기 위해 지상의 모든 삶을 소비한 지루한 군상들과 절대 마주치고 싶지 않다. 왜냐면 그들이 “우리가 옳았어! 우리가 옳았어!” 라고 승리에 날뛰는 것을 본다는 건 지금 이 삶 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 될테니까." 그러니까 그는 이를테면, 서머셋 몸이 말한 “humorous resignation”에 누구보다도 모범적으로 들어맞는 남자였다. 그렇다면 그러한 괴테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을까. 그의 죽음을 지켜본 의사의 일기장은 그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괴테는 “끔찍한 공포와 불안에 사로잡혀있었다”. "잘" 죽는 것에 관한 또 다른 질문. 과연 우리는 "우리"로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로서 죽는가? 라벨의 사례. 그의 건강은 몇년에 걸쳐 점점 내리막길을 걸었고 그는 천천히 죽음을 맞이했다. 처음에는 단어가 입을 비껴나갔다. 그 다음에 그는 포크를 반대방향으로 집었으며, 이름을 사인할 수 없었고, 결국 외출할 때마다 가정부가 꽂아넣은 집 주소를 코트 안에 달고 다녔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자신의 현악 사중주를 녹음하는 자리에 참석했다. 녹음이 모두 끝났을 때 라벨은 프로듀서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훌륭했네. 작곡가의 이름을 알려주겠나.” 라벨의 또 다른 사례. 그는 자신이 작곡한 피아노 음악의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 내내 그는 굉장히 즐거운 듯이 보였다. 연주가 끝나고 객석의 관객들이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을 때, 라벨은 그들이 옆에 앉은 친구에게 박수를 보내는 줄 알고 덩달아 웃으며 박수를 쳤다. 라벨은 곧 프랑스 신경외과의들에게 보내졌다. 두개골이 열렸고 다시 닫혔다. 열흘 후, 머리에 여전히 붕대가 감긴 채로, 라벨은 죽었다. "Nothing to be frightened of"는 철학서가 아니다. 혹은 알약처럼 신통한 명상을 제공하는 잠언집도 아니다. 논리는 명징하지 않고, 일화는 뒤섞였으며, 사고는 불친절하게 구불거린다. 반즈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고, 다시 그 답을 회의했다가, 또 다른 질문을 던지고, 한순간 확신에 가득찼다가, 다시 스스로를 의심하며, 어느 순간에는 "이 책을 다 마치기 전에 내가 죽을지도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가 이내 "혹은 당신이 그 전에 죽을지도 모르지"라고 애도를 표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는 연단에 서기보다는 연단에 선 사람을 향해 질문을 던지는 남자다. 그는 가르침을 전하기보다는 조곤조곤 말을 건네는 남자다. 권위의 껍질은 떨어져나갔고, 문장은 싱글거리며 살아 움직인다. 반즈는 개인으로서의 죽음 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죽음에도 촉각을 세운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책이 "마지막 독자"를 맞이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그는 자신의 책을 선택한 최후의 한 사람을 향해 깊은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당신이 마지막 독자라는 것은 당신이 이 책을 읽고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닌가. 다시 반즈는 소리지른다. “개자식! 꺼져버려!!!!” 그러니까 이 작가는, 유머감각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아는 남자다. "Nothing to be frightened of"는 어쩌면 그저, 죽음에 사로잡힌 남자의 이야기다. 그것은 궁극적인 소멸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그 이해할 수 없는 심연에 매혹된 남자의 이야기다. “소설가는 침묵으로부터, 미스터리로부터, 공백으로부터, 모순으로부터 시작한다." 반즈의 출발점은 죽음이고, 그 여정은 문학, 역사, 음악, 미술, 철학, 과학, 그리고 작가 개인의 삶의 경계를 이리저리 분방하게 뛰어넘는다. 여행의 실타래를 얽고 풀어내는 것은 기막힌 이야기꾼의 솜씨다. "Nothing to be frightened of"는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가 이내 히스테리컬한 웃음으로 읽는 이를 인도하는 책이다. 그것은 육중한 무게로 머리를 공략하다가도 허파를 간지럽히고 이내 심장을 깊숙이 찌르는 책이다. 이 아찔하고도 매혹적인 여정이 말미에 이르렀을 때, 그리하여 줄리안 반즈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순간 나는 이 작가의 놀랍고도 사랑스러운 재치에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2009년의 서두를 아름답게 장식한 이 책이 나의 2009년 최고의 책이 될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황홀하게, 조금은 섭섭하게 벌써부터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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